한국 치즈·버터의 역사
왠지 유제품에는 약한듯한 한국
왜 그럴까?
한국 치즈·버터의 역사
왜 최상급의 메이드 인 코리아 치즈와 버터를 보기 힘들까?
한국은 유럽이나 미국처럼 버터와 치즈를 생산할 기술이나 지식이 부족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이유를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사실 이것은 기술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농업적·문화적 발전 과정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버터와 치즈 같은 유제품이
왜 전통적인 한국 음식문화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지 못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조선시대: 우유는 매우 귀한 자원이었습니다
낙농 중심의 축산 시스템이 없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소는 지금처럼 우유와 고기를 얻기 위한 가축이 아니라
농사를 짓기 위한 노동력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체계적인 낙농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의 숫자도 많을 수가 없었지요.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우유는 매우 귀하고 제한적인 식품이었습니다
우유는 주로 왕실과 일부 상류층을 중심으로 소비되거나 죽에 섞는 등 제한적인 형태로 사용되었습니다.
우유 자체가 매우 귀했기 때문에 발효나 가공을 실험할 만큼의 잉여 우유가 생기기는 당연히 어려웠겠죠.
그러니 버터나 치즈를 만드는 기술이 자연스럽게 발전하기도 더욱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버터와 치즈는 생각보다 많은 우유를 필요로 하는 식품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치즈 1kg을 만드는 데는 약 10L 안팎의 우유가 필요할 수 있고,
버터 1kg에는 약 20L 이상의 우유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물론 치즈의 종류와 제조 방식, 우유의 지방 함량에 따라 필요한 양은 달라집니다.
하지만 당시처럼 우유 자체가 귀했던 환경에서
이런 식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먹는 문화를 발전시키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20세기 초부터 중반까지: 발전이 중단된 시기
식민지 시기(1910–1945)
일제강점기 시대입니다.
이 시기 한국의 농업과 산업 시스템은 외부의 강한 통제를 받았고,
독립적인 낙농산업이 발전할 여지는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해방을 맞이하지만,
곧이어
전쟁 이후의 황폐화(1950년대)
네, 한국전쟁이 벌어집니다.
그 이후 한국은 극심한 빈곤과 식량 부족에 직면했습니다.
그냥 당장 먹고 살 식량 자체가 부족했습니다.
우유와 유제품은 사치품에 가까웠습니다.
산업 기반 시설도 크게 파괴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다양한 식품을 개발하거나 가공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보다 생존 자체가 우선이었습니다.
1960~1970년대: 현대적인 낙농업의 시작
기본적인 영양 공급에 집중
이제 정부가 본격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낙농업의 중요한 목표는 국민에게 우유와 분유 등 기본적인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장 태어나는 아기들에게 분유를 공급하는 것도 중요했고,
국민 전체의 영양 상태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래도 버터와 치즈가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서울우유의 공식 연혁을 보면 1964년 버터 생산을 시작했고, 1973년에는 치즈 생산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낙농업이
유럽처럼 다양한 숙성 치즈나 고급 버터를 중심으로 발전할 여력은 없었습니다.
우유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국민에게 공급하는 것이 먼저였으니까요.
한국 치즈의 시작: 임실치즈
1960년대 벨기에 출신의 지정환 디디에 세르스테반스 신부는
전라북도 임실에서 지역 주민들의 소득을 높이기 위한 사업으로 산양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산양유 판매가 잘 되지 않자 이를 활용하기 위해 산양유로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임실치즈는 1966년부터 지정환 신부의 주도로 시작되었으며,
이후 지역 주민들과 함께 유럽의 치즈 가공 기술을 배우면서 발전했습니다.
1969년에는 우유로 만든 카망베르 치즈도 생산했습니다.
즉, 한국에서도 치즈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생각보다 일찍이었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치즈를 만들 수 있었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한국인의 전통적인 음식문화로 자리 잡았느냐입니다.
그 부분에서는 유럽과 상당히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산업 성장과 가공치즈의 등장
1970년대 낙농업의 확대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한국의 낙농업도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유 생산량이 증가했습니다.
시장에 우유 잉여분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낙농업체들은 다양한 유제품 생산을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야 버터와 치즈 같은 가공 유제품을 보다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진 치즈
하지만 한국에서는 유럽처럼 오랜 시간 숙성시키는 전통 치즈 문화가 발전하기보다는
가공치즈와 대중적인 치즈 제품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었습니다.
자연 치즈의 강한 냄새와 맛이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인의 식습관에 맞게 제품이 조정되었습니다.
결국 치즈는 주로 햄버거, 샌드위치, 피자 등의 토핑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치즈는 하나의 독립적인 음식문화라기보다는
편리하게 사용하는 식재료에 가까운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서울우유의 연혁을 봐도 1984년에는
모짜렐라 치즈, 체다 슬라이스 치즈 등의 생산이 이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는 왜 유럽식 치즈 문화가 발전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기술 부족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여러 구조적인 요인이 함께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낙농업의 역사가 짧았습니다.
식민지 지배와 전쟁을 겪었습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식량이 부족했습니다.
낙농업이 발전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음식의 다양성보다는
국민 전체에 빠르게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유럽처럼 오랜 기간 숙성시키는 치즈 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기 어려웠습니다.
현대 한국: 조금씩 확대되는 유제품 문화
현재 한국에서는 유제품 문화가 조금씩 확대되고 있습니다.
유럽산 치즈의 수입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저 햄버거 사이에 넣어 먹는 체다치즈가 치즈의 전부인 줄 알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유럽의 다양한 전통 치즈를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베이커리와 카페 문화도 크게 성장했습니다.
더불어 버터와 다양한 종류의 치즈에 대한 인식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한국인의 치즈와 버터에 대한 경험 자체가 상당히 다양해진 것입니다.
결론: 지식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역사적 경로가 달랐습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버터와 치즈 문화가 제한적이었던 것은
한국인이 버터와 치즈를 만들 줄 몰랐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만들 줄 몰랐다’보다는
‘만들 수가 없었던 환경에서 살아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요?
조선시대에는 우유 자체가 귀했습니다.
이후에는 식민지와 전쟁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전쟁 이후에는 당장 먹고살 식량과 국민의 기본적인 영양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낙농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뒤에는 이미 한국만의 음식문화와 식습관이 굳어져 있었습니다.
전통도 아니었을 뿐더러 필수로 먹어야 하는 음식도 아니게 된것이죠.
만약 저런 악조건이 없었다면 치즈와 버터가 한국에서도 발전했을까요?
어쨌든 한국 역시 발효 음식 문화가 매우 발달한 나라임은 분명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유럽처럼 치즈와 버터를 발전시켰을 것이라고는 못하겠습니다.
버터와 치즈 역시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낙농업과 함께 발전해 온 하나의 음식문화 그 자체이니까요.
그저 한국은 유럽과는 매우 다른 농업 환경과 역사적 조건 속에서 살아왔고,
그에 맞춰 또 다른 음식문화를 발전시켜 온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